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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는 있다.

자본주의의 한계가 도달했다

by 워니준 2021.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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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개개인의 이기심을 근본으로한 제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근시안적으로 생각하고 남과 공동체를 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먼 미래를 생각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생계에 대한 걱정과 돈 욕심때문이지요. 저는 이 돈 이란 것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극단 적인 생각일까요? 하지만 지금 돈으로 인한 문제점들로 전세계인이 앓고 있습니다. 환경 오염부터 시작해서 각종 범죄나 자살율, 빈부격차 등... 세상이 사랑이 넘치고 평화로워질 수 있는 기미는 점점 안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자본주의는 한계가 도달했고, 이 자본주의라는 시스템부터 뜯어 고치거나 갈아 엎어야 합니다.

 

자본주의라는 경쟁시스템 때문에 세상에 물건들이 많이 생성되고 그에 따라 쓰레기도 넘치게 되었습니다. 모두 인간의 허영심과 물욕을 채우기 위한 물건들 입니다. 필요 이상의 물건들이 계속해서 만들어 집니다. 구매욕을 자극하기 위해서 이지요. 이런 물건이 또 계층을 만들고 허영심을 만듭니다. 악순환의 고리입니다. 고급 승용차와 세단 초호화 요트 등이 정말 인간에게 필요로 한 걸까요? 만약 이런 물건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면 견물생심이라 하여 구매욕 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남과 비교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견물생심이 핵심입니다. 세상에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면 갈등과 번뇌 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기술이 주는 편의와 혜택을 멀리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기술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사회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기술을 주도해야 합니다. 이는 곧 정신 문명이 물질 문명을 주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과학 기술은 양날의 칼입니다. 칼을 쥐고 흔드는 사람의 도덕성에 따라 무기가 될 수 있고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건 기술을 개발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도덕성입니다.

 

4차 산업은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 준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실은 거대한 통제라는 아주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부분에 대해선 나중에 더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물질 문명이 가져다 주는 것이 행복만은 아니라는 것 입니다. 욕심위에 더 큰 욕심이 있고 더 큰 욕심이 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마음을 절제하고 깨닫고 더 발전하지 못하면 물질의 발전은 인간에게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재앙이 될 것입니다. 스스로 마약을 취하는 것 처럼 말입니다.

 

저는 이 기술의 고삐 풀린 발전이 자본주의로 인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없는 경쟁과 자본의 욕심 때문에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선한 기술이 발전하지 못하고 자극적이고 편리성만 추구하는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국민과 지도층이 깨어있어서 이 기술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우선 국가 경쟁력과 돈에 물려 있기 때문에 왠지 기술을 발전을 멈추면 옆 나라보다 뒤쳐지는 것 같습니다. 단거리 경주처럼 옆 선수만 보고 달리는 꼴 입니다. 우리는 이 발전은 멈추어야 합니다. 끝없이 파이만 키우는 것을 중단하고 돌아봐야 합니다. 이 발전 방향이 맞는지, 그리고 이웃의 고통을 귀기울여야 합니다. 

 

돈이 사라진다면 말입니다, 혼란은 잠시 존재할 것입니다. 하지만 살기위한 방법은 어떻게는 찾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필요치 않은 물건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무제한적인 생산 공장은 멈추게 될 것입니다. 자연도 기뻐할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필요한 것들에 집중하고 핵심적인 것들을 필요한 만큼 생산아며 나눠가질 것입니다. 그것에는 동료애와 선, 공동체 의식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지혜와 판단력이 존재합니다. 그 외에 사치스러운 물건들은 생산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먹고사는 것에대해 걱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정신세계와 보다 본질적인 것들에 대해 집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부분에 있어선 교육이 필요하겠지요. 정신 문명을 올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잘 알고 있는 스승이 필요할 것입니다. 돈으로 경쟁하며 과시하려는 심리는 사라지며 기술 발전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쪽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서비스의 질과 연구의 질도 월등히 좋아집니다. 모든 일은 봉사의 개념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돈이 목적이 되지 않습니다. 타인의 만족에 초점을 둘 수 있으며, 그로인해 나의 만족도 생기게 됩니다. 일의 댓가로 돈이 주어지면 타인의 만족 자체보다 돈에 집중하게 됩니다. 오히려 타인이 받는 서비스의 질은 하락합니다. 서비스의 질이 좋아야 돈도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결국엔 돈이 목적이 되기 때문에 그 서비스의 본질과는 멀어지기 때문에 효율적이지 못합니다. 과학적인 연구 성과도 월등히 질이 좋아집니다. 돈에 엮여 있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 연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 걱정없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논문에 딴지를 걸면서 넘어지는 일도 적을 것입니다. 돈으로 논문을 조작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실적과 명성을 위한 논문이 아니라, 인류애와 선을 위한 논문이 쓰여질 것입니다.

 

물질이 세상이 돌아가는 중심이 되어선 안됩니다. 언제까지나 물질은 도구나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돈이 없다면 홀로 개개인이 깨어있어서 공동체를 신경쓸 것입니다. 자비와 선으로써 타인을 돌볼 것이며, 필요한 만큼 물질을 제공할 것입니다. 그리고 각자의 재능과 열정으로 타인에게 필요한 부분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공동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촌문화가 발전하며 외로움과 그로인한 타락은 없어질 것 입니다.

 

죽으면 한푼도 가져가지 못하는 것이 돈 입니다. 죽으면서 가져가는 것은 경험과 깨달음 기억입니다. 물질에 집착한다면 땅에 집착을 하는 것이고 더 나은 세계로 가는 것이 힘들어 집니다. 예수님도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물질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온다면 정말 국민은 행복해 질 것입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도덕적인 각성이 있어야 합니다. 교육을 재편해야 합니다. 우열을 가리고 대학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양심과 선을 가르치고 종교적 진리도 필요하며, 개개인의 적성과 재능을 존중하는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운동은 우리 나라만을 시작으로 전세계에 동시에 펼쳐여야 합니다. 경제 성장을 멈추면 각국으로 부터 견제가 들어 올것이기 때문입니다. 물질의 축적은 허영심입니다. 욕심입니다. 집착입니다. 내려 놓는 것이 갈때 가더라도 행복하며 편안합니다. 그리고 고통받는 이웃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런 이상적이고 평화로운 유토피아 세계를 건설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이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정확히 이끌어줄 지도자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늘이 내린 천재를 선택해야 합니다. 판단하는데 행운이 따르시길 기도드립니다. 한민족은 현재 외국자본의 노예이니 유대인이 이집트의 노예였던 시절을 떠올리셔야 합니다. 해방시켜줄 모세님 같은 존재를 찾으셔야 하고, 말세 시대에 맞는 진리를 가르쳐줄 예수님 같은 분을 지도자로 모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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